김혜리의 필름클럽 - 미나리를 보고 책,TV,영화 감상문

안녕하세요.

제가 영화 후기를 보내는 것은 작년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고  후기 보낸 후 두번째네요.

미나리 영화에 대해 몇 마디 쓰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무리 봐도 이것은 한국 영화 아니고 외국영화이며 미국동포의 미국영화라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자체적으로 리뷰하는 것에 제가 흡족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예요.

몇 년 전에 싱글라이더라는 이병헌 공효진 주연의 호주 로케이션 영화가 나왔을때도
호주의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그 영화에 공감도 많이 했고 그 영화의 디테일에 대해 찬사도 나왔지요.
증권회사 다니다 돌연사하는 이병헌 캐릭터와 하버브릿지의 용접공이지만 바닷가 집에 살며 오후에 일마치고 수영 가는 노동자의 대비에 대한 고찰도 있었는데
한국의 리뷰에서는 전혀 그런 점이 다뤄지지 않는 것 보고 좀 안타까왔어요.
현지 사정 잘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점들이 있구나 싶었거든요.

미나리는
정말 해외동포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또 저와 같은 이민 1세대를 다루고 있지만 
저는 할 수 없는 이야기였어요.
저는 일단 살기 바쁘고 적응하기 바쁘고 평생을 영어 배우기 바쁘고
무언가에 대해 글을 써도 계속 호주의 이런 점은 한국의 저런 점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비교를 하게 되어요.

하지만 이 영화는 한국과 무엇을 비교할 생각이 아예 없어요.
한국은 그냥 그랜마가 살다 오신 곳일 뿐이죠.
소품으로 문화로 가풍으로 계속 한국적인게 비춰지지만 
이 이야기의 화자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하는
이민자들의 향수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계속 아이들 생각이 났어요.
우리가 사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지.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내 이야기를 진정으로 전달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제 아이들은 이 영화의 화투 나오는 장면에 많이 웃었네요.
실제로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자기 친구에게 화투 치는 법, 같은 화투장 고르는 법을 영어로 열심히 설명하기도 했거든요.
고춧가루와 멸치를, 올 때마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오며, 먹기 싫은 거 먹이려는 할머니
교회에 가자고 기도하자고 하면서도  쉽게 회초리로 훈육을 하려는 부모 
정말 많이 있는 일이죠. 
경찰에 신고한다고 대드는 아이는 나오지 않았지만요.

할머니캐릭터가 너무 손자만 선호하지 않고
손녀에게도 관심을 주는 캐릭터라 좋았어요.
손자에게 한약 달여줄 때 또 뻔한 남아 선호인가 했는데
단지 심장이 좋지 않은 애를 더 돌보려는 것이라 좀 마음이 놓였구요.

만약 손녀 앤의 시각으로 이 영화를 다시 만들면 어떨까 
더 리얼하고 덜 낭만적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 한편으로는 저 어렸을 80년대에
그 수없이 많던, 미국 이민가는 친척, 친구들이 생각났어요.
다들 좋겠다며 엄청 부러워했었죠.
그들이 정착하고 보내온 사진은 다 그럴듯한 안락의자에 앉아 벽난로를 배경으로 찍거나 
큰 정원에서 찍은게 많았거든요.

그런 이민자들의 삶의 실체는 이 아칸소주의 가족이었을테죠.
대도시에서는 병아리 감별사같은 일
닭공장의 닭처리 기사일
세탁소, 청과물 가게, 호주의 경우라면 청소, 세차 등 남들이 안하는 일로 자리를 잡는.

지금은 한국에서 무작정 이민을 나오는 일은 별로 없죠.
가면 어떻게 사는지 다들 이젠 잘 알기도 하고.




이 영화를 보고 온 호주의 여성 커뮤니티에는
'진짜로 화투장 들어있던, 엄마가 가져왔다 놓고 간 가방 끌어안고 통곡을 하고 울었다',
'아이들만 대학가면 여길 뜬다 가서 엄마 다시 만나서 산다'는 감상도 있었어요.

호주생활 초기에는 한국 사람 없는 곳으로 숨어숨어 멀리 떠나다가
좀 정착하고 나면 한국 마트 생활권에 1시간 가까이라도 가서 살고 싶어하는게 이민자들이죠.
향수를 좀 달래기 위해서

우리가 느끼는 향수나 외로움은
한국에서 떠나올 때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거예요.
꼭 상처가 나서 아파서가 아니라 항상 주위를 가볍게 맴도는, 하지만  한번도 그 존재가 무시되지 않는 하아아아 하는 정말 깊은 한숨이거든요...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죠.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결론이 그리 쉽게 나지도 않아요.


그러면서도 미나리가 정말 미국영화라고 느낀 것은
농장 노동자 폴의 존재가 아닌가 해요.
어딘가 꼭 있을 듯한 약간 정신이 이상한 것 같지만 친절한, 그러면서 꼭 자기 고집대로 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별 불편 없이 그냥 살 수 있는 데가 미국이죠. 호주이기도 하구요.

이 분의 존재로 미국 시골의 현장성이 엄청 더해졌고
그 연기가 아주 좋았어요.

이게 이민자로 이루어진 나라의 단면이고
그래서 이거야말로 이민자천국 미국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어 대사가 50%가 넘어서 개인적으로는 '이 큰 극장에서 이렇게 다 알아들으면서 영화보는 건 정말 진귀한 경험이야' 하면서 신기해 했지만.


세 분의 필름클럽 
호주에서 정말 반갑게 매번 듣고 있고 덕분에 제 취미 생활도 풍부해져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김혜리 기자님 조용한 생활도 남편 계좌로 구독중이구요.ㅋㅋ
계속 계속 만나서 이야기 나눠주시길 염치없게 원하는 팬 여기도 있다고 알려드려요.
여긴 가을이 옵니다. 거긴 봄이 오겠죠.

그럼 환절기에 부디 몸조심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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