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28 22:39

후원자와 소비자, 글로리 서포터와 빠(또는 광팬) └나와 태지










1. 서태지와 그 팬덤에 대해 숙고하다가 다다른 생각인데요. (우하하하. 나란 녀자 숙고가 습관인 녀자)세상에는 예술가가 있고 그에 대한 후원자와 소비자가 있다고 생각이 되어요. 앨범이 맘에 들면 사고 공연이 끌리면 예매하고 상황이 안되면 못가는 거고. 예술가가 가치를 지불할 만한 예술생산물을 창작해내면 구입을 하거나 하지 않는 입장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바로 소비자겠죠. 이런 소비자가 많아져야 예술가들이 밥 먹고 살 수 있겠죠. 많은 소비자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예술가도 노력을 할수도 있고 물론 아닐 수도 있고. 예술이 곧 상품이냐 하는 것은 더 논의의 여지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의 스타 서태지가 하는 것은 바로 이런 틀이니 그 이상 나갈 필요는 없을 거구요.

돌아다니다 본 인터넷 댓글 중에 좋으면 사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 그 사람의 지갑사정까지 걱정해주는 것은 오바다 하는 내용도 있었어요. 피식 웃음이 나더라구요. 나는 언제나 오바가 팔자구나.
문화콘텐츠가 좋으면 이런 것을 계속 공급받고 싶어서 생산구조를 알아보고 싶어지죠. 돈이 모자르다고 하면 그때부터는 도와주고 싶죠. 이제는 더이상 단순 소비자가 아닌 거죠. 후원자이지. patron이라고나 할까.

후원자의 입장에서 서태지를 보는 많은 시각들이 소비자들의 시각과 많이들 충돌하더라구요. 무언가를 '후원'해주고 싶을 만큼 뭔가를 애정있게 대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많을테고. 지난번에 라라라에서 본 손지연이라는 인상적인 가수분은 팬 한분이 1천만원을 대줘서 앨범 작업을 했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손지연씨의 음악이 듣고 싶었으면...마구 공감이 되더라구요.

이 두가지로 팬들을 판단한다면 저는 후원자이지 않나 싶어요.

 


2. 이번에는 글로리 서포터와 빠.

빠라니. 빠, 빠, 빠.
지니님의 블로그에서 자신은 글로리 서포터일 뿐이며 빠와 구별된다는 글을 읽고 여러 생각하다가 잡담좀 해보고자 해요. 빠 말고 광팬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이거나 저거나 간에 범상한 이름은 아니네요, 그죠?

글로리 서포터라는 것은 스타가 제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서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 와아~ 하면서 좋아하고 찬양하는 것을 말한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은 스타가 능력이 쇠하면, 최고 자리를 내어주면 그 열정도 식는다네요. 지금 김연아 선수의 팬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을 거라구요.

글로리 서포터가 사실은 일반적인 의미의 팬 아니겠어요. 팬사이트에 쉴새없이 넘쳐나는 우월하다는 말. 실력에, 재능에, 노력에, 외모에, 목소리에 몸매에...모든 게 뛰어나니 자연히 팬이 되는 거고 열광하는 거고..어쩌면 글로리 서포터가 충분히 많아지면 그 과정에서 '빠'가 등장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이분법으로 따진다면 '빠'는 그가 영광을 얻든 얻지 못하든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거겠죠. 그 수는 극히 적겠죠. 일반적인 사람들에게야 겨우 가족과 몇몇 친구들만이 가능한 걸테고 ...
신해철이 얘기했던 '팬의 속성은 사실 맹목적인 것이다. 비판적인 시각 따위가 존재한다면 그걸 팬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명제는 사실 빠에 가깝다고 봐야되겠네요.

서태지에게 빠들이 많다고 본다면 외부에서 보는 따가운 시선도 이해 못할 바는 아녜요. 객관적이고자 하는 글로리 서포터는 사실 많잖아요. 지니님도 자신이 그런 사람중의 하나라고 그랬고 그런 사람의 눈에는 스타의 모든 것에 죽고 못사는 광팬들이 얼마나 유치하고 우습게 보이겠어요.

객관성에의 유혹이라는 것은 상당히 강렬한 것이라서 팬이라고 자처하는 누구나 자신이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거거든요. 비판할 것은 비판하자 라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걸거고. 샤발파니 뭐니 하면서 광팬들과 거리를 두려하는 시크한 팬들도 생기는 거고. 그래서 팬이라는 거대한 이름안에 별별 그룹들이 존재해 있구요.

처음에 얻으려던 답은 과연 나는 글로리 서포터인가 광팬인가 하는 거였어요. 태지가 영광을 얻고 있을 때만 거기에 반하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지 않아도 계속 팬일 것인가. 처음에는 광팬이라고 생각했지만 과연 그것이 진실일까 나 또한 그가 잘되는 것을 봐야만 그를 좋아할 서포터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왜냐하면 그것이 너무나도 일반적인 인간들의 모습이니까요.

예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 수천이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지만 십자가에 달릴 때는 초라했죠. 오로지 가족과 여자 추종자들, 제자 몇명이 그의 옆에 있어주었죠. (물론 부활과 그 이후의 이야기는 논외로...)

그가 잘될 때 내가 잘되는 것 같고 그가 승승장구하면 나도 승승장구하는 것 같고 그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은 글로리 서포터의 단계를 뛰어 넘어 진심으로 광팬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나 섣불리 말을 하지는 못하겠어요. 당장 9집 나올 때 내가 매냐보드에 지금처럼 출몰할 수 있을까요. 온라인팬질은 안하지만 여전히 서태지의 팬이야 이러면서 자위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섣불리 미래를 약속해서는 안되는 게 인생사더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서태지의 활동의 정점에서, 음악적인 전성기에 이런 얘기를 꺼내보는 것은 제가 나중에 가질 그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해보는 거예요. 아무런 실망시킬 일도 하지 않는 그 남자라서 팬들을 시험에 들게 하지도 않아서 더 안스러운. 그 사랑스러운 남자를 위해 영원을 맹세하고 싶지만 삶이란 게 사실 엄청 무서운 것이라 그저 항상 최선을 다해보겠노라고 밖에 얼버무릴 수밖에 없는게 참....

서교주와 광신도들. 객관적으로 보기엔 얼마나 우습고 유치한가요. 그런게 농담으로라도 가능하다는 것조차 이해가 안되는 일이겠죠. 인터넷 여기저기서 보이는 그런 폄하의 글도 사실은 수긍이 가요. 서팬덤에 들어와봤어요, 안 들어왔으면 말을 말아요. 이게 바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죠.

태지..
'자칭 도도'한 오즈가 그 강렬한 '객관성 유지'의 유혹을 뿌리치고 영원한 광팬 선언을 하고 싶은 것은 서태지 당신이 너무 너무 좋아서야. 우리 아빠하고 남편 말고는 한 남자에 대해 이렇게 골똘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어, 정말. 전생에 우리는 도대체 무슨 인연이었을까.



덧글>서태지 평론이 고프다라는 아랫 글에서 칭찬의 평을 찾아 다니는 게 아니냐는 말을 한참 생각해보다 포스팅 합니다. 결론은 당연히 칭찬이 고프다는 거라는 거. 나는 후원자요, 광팬이니 목적에 부합하는 정당한 비판(?) 따위는 나의 몫이 아니라는 결론. 나에게는 서태지의 음악은 오르가즘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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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烏有 2009/03/28 22:50 # 답글

    기분 좋자고 글찾아보는데 까는글이면 "페이크다, 이 *신들아!"라는 소리 들은 기분이죠. 물론 그사람은 낙을 의도가 없겠지만, 매냐들 눈과 귀엔 깔데가 없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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