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9 23:39

거룩한 낭비 └태지팬덤

콘서트 가는 분들은 가느라고 바쁘고
다른분들은 주말을 즐기느라 바쁘고
또 다른 분들은 그저 빈 게시판 쳐다보고 계시나요.

곰돌이 구입빙시에 서태지M관 추첨빙시에 내일 콘서트도 못가시는 분들은
무슨 낙으로 오늘밤을 보내시나요...

 

팬심이란 게 뭘까요.
정말 끝없이 물고 늘어지게 되는 질문이 아닐 수 없어요. 저는 이것을 하도 고민하다가 정말로 예수의 열두제자도 팬이었다는 결론 아닌 결론에 까지 이르다가 아니, 그렇다면 팬심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 이런 뻘생각까지 하다가 현실로 돌아온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예요.

객관적이고자 하는 욕망은 머리 굵고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한가요. 내 팬심이 세상 기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시시때때로 확인하는 일은 가련한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끼리의 팬 세상에 모여살 수 밖에 없고 서로의, 세상기준에서는 뻘짓인, 팬심을 확인해가며 나도 더 불태우리라 전의를 가다듬는 거죠. 돈이 나오나요, 먹을 게 나오나요. 돈들여가며 파산해가며 우리는 우리의 오빠를 모시죠. 같은 동병상련끼리 서로 용기 북돋아줘야 하는데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으면 공동의 적이 될수밖에 없고, 내쳐야 하는 거고.

가끔은 이런 팬질에 회의가 들죠. 정상적으로 살고 싶기도 하고 그만 미치고 싶기도 하고. 난 팬이 아닌가봐. 내 팬심은 저들에 비하며 두리뭉실한 걸. 그냥 바라만 보는 게 낫겠어. 마침 용어도 있구만. 덩어리, 완전팬,팔로스 등등등. 거기에 끼지는 않는게 낫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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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피아노 연주회에 갔었어요. 아는 분의 자제가 시드니 콘서바토리움의 연주자 과정에 있는데 졸업연주회를 하는 거였어요. 시드니콘의 수업의 일부기 때문에 무료로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1주일 전에 알게 되어 옆집의 애기 엄마한테 월요일부터 천천히 밑밥을 깔고 급기야는 오늘 베이징오리에 월남국수까지 안기고 아이들 둘을 부탁한 다음에 혼자 기차를 탔습니다. 혼자 앉아서 시드니 하늘을 바라보며 듣는 모아이는 어찌나 좋던지요. 막 콧노래가 나오더라구요. 시드니 콘서바토리움은 오페라하우스 근처에 있어서 오랜만에 완전히 자유로운 처녀처럼 시드니 거리를 활보하며 커피 한잔 하고 음악을 들으러 앉았습니다.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데..웬걸, 저는 울고 말았습니다. 눈물이 툭 떨어지는 게 저도 웬일이냐 싶더군요.
1.직접 연주되는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좋았어요.
2.역시 예술의 수용은 수용자의 감정상태가 반영이 되는 건가 봐요. 걱정거리가 많은 상태에서 음악을 들으니 슬픈 감정이 자극이 되더라구요. 화려한 기교였지 슬픈 음악은 아니었는데.
3.누군가 열심히 준비한 연주를 듣는다는 게 황송했어요. 그 삐까번쩍한 연주홀도 좋았고 온전히 피아노 소리외에는 아무런 소리(애가 칭얼댄다든지)가 없는 그 완벽한 상태가 좋았어요.
그래서 울었나봐요. 참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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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우리 아빠가 하시던 얘기예요. 예수가 죽기 얼마전에요. 죄인들과 파티를 하고 있었는데 (예수는 하도 밥먹고 즐기는 것을 좋아해 바리새인들로부터party-goer라고 불렸다죠.) 한 여자가 들어와 삼백데나리온(노동자의 거의 1년치 급료)이나 하는 향유를 깨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겨드렸죠. 열두 제자 중에 회계를 맡은 유다가 그 낭비와 사치를 지적하며 그 돈이라면 가난한 자에게 줄 수 있을 거라고 비난했죠. 근데 예수는 여인을 옹호하며 받은 사랑과 은혜가 많으면 그것을 그만큼의 크기로 답례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인의 이야기도 같이 전해질거라고 하셨죠.

아빠는 할머니 무덤에 놓는 꽃을 육십 몇세가 되시도록 한번도 사신 일이 없다가 이 향유에 대한 얘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셔서 성묘 가실 때 꽃을 사들고 가세요. 단선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그 돈을 아껴서 좋은 일에 쓰지 왜 꽃에 낭비를 하나 하셨었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꽃을 사고 무덤에 놓고 그랬으면 정서교육에도 좋았을 것을...그랬다고 하시더라구요.

예술이라는 게 참..낭비예요. 대중예술이건 고급예술이건..마치 꽃을 사서 들고 다니는 것처럼 낭비죠. 피아노 연주 한번 들으려 가려면 애들 맡겨야 되고...그거 듣는다고 돈이 나와 떡이 나와.... 예술은 사실 실제적으로 아무도 배부를 수 없고 아무도 등 따시게 만들 수 없잖아요. 마치 강마에가 이재민들이 모여있는 시민회관에서 연주회를 할 수밖에 없을 때 비난을 받는 것처럼. 예술의 이 낭비적이며 사치적인 속성은 그 본질에서 거세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봐요.

팬질도 낭비죠. 전투 올출할 돈이면 종잣돈 될 수도 있는데, 할부로 차를 살 수도 있는데 말예요. 이게 객관적인 시선이죠. 서태지의 환상적인 무대도 화려한 불꽃도 그 이상의 낭비가 없죠. 더군다나 사회가 뒤숭숭할 때 말이죠. 분명히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여인에게 준 사랑, 여인이 예수에게 보여준 보답은 정말 너무 애틋해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할 수 없고 개의치 않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것 같아요. 삼백데나리온이 하나 아깝지 않던 사랑..올출이 아니라 더 한 것도 할 우리들의 사랑....말 한마디 틀린 게 없던 그 논리적인 그 남자 제자, 유다는 결국 끝까지 함께 가지 못했죠. 주위에는 여인들과 미친 매니아들만 남았죠.

태지매니아.
어쩌면 우리는 매니아의 열정과 광기로 세상의 진보에 기여하려 했었는지도 몰라요. 서태지를 따라가며 매냐노릇을 하면 그 길로 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지도....
그러나 이제는 길은 분화되었고 갈려졌으며 어느 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지는 각자 선택 해야 해요. 태지가 가는 길은, 사실 언제나 그랬듯이 동시대의 길이 아니죠. 그가 동시대인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너무 늦게 온거죠. 언제나 그는 미래, 우주인이었는 걸.

이제는 매니아가 진짜 보편적 호흡없는, 또는 신경 안쓰는 '미친 매니아'가 되는 길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같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그것뿐인 것 같습니다.

이 거룩한 낭비, 미친 매니아가 되는 길에,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있는 제가 얼마나 함께 갈 수 있는가를 재보지 않을 수 없어요. 한마디로 그런 거죠. 왜 나만 놔두고 다 가버리는 거냐. 둘이서도 못하던 일을 나 혼자 어떻게 하냐. 이제까지처럼 모노드라마 쑈라도 계속 하라는 거냐...음, 한마디가 아닌가.

 


(태지매니아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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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6/23 16:15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오즈 2009/06/24 21:22 #

    눈물나게 고마운 글이예요. 콘서트 간다니 그 이상 기쁘고 반가울 수가 없어요. 매냐보드가 부담되면 여기라도 가끔 들려서 답글 달아주세요. 항상 읽고 계시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우리 동년배라 느끼는 게 비슷한가 봐요. ㅎㅎㅎㅎ
  • 2009/06/24 16:0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6/25 09:3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6/25 16:32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오즈 2009/06/25 18:42 #

    호호호. 그것도 다 알죠. 저 빠른 70이라 69년생들과 학교 다녀서 제 친구들은 다 69년생이에요. 그래서 동년배로 친거죠. 한국에는 7월 1일 밤에 도착합니다.
  • 2009/06/28 13:12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오즈 2009/06/28 22:52 #

    누가 옆에서 안아주었다니 정말 감격스러웠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네요. 진짜 후회하죠, 태지 콘서트는. 세상에 어떻게 안 갈 수가 있겠어요. 이런 걸 모르는 사람들이 바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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