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3 01:29

나를 채운 알콜, 그를 채운 물 └나와 태지



우주의 거짓을 배우게 된 시간
나를 채운 물과 그 흐름이 같은 나의 연인들에게 나의 모든것을 바칩니다.
고마워
(서태지 정규 앨범 ATOMOS Thanks to)

나이가 마흔 바라보는 사람, 또는 그거 넘은 사람만 붙어봐요.

제가 좋은 사람과 한 잔 했어요. 역시 마흔 넘은 사람이고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한 잔 사주더군요. 술 먹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고 얘기가 통했어요. 헤어져 있다 몇년에 한번 만나는 사람인데 여럿이 어울려 잠깐 밥이나 먹을 뿐인데 그런게 느껴지잖아요. 아직은 나와 주파수가 같구나.

노통이 가시고 나서 너무 충격받은 마음에 인터넷을 3일인가 4일 안했어요. 나는 황망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인터넷에서 뻘글을 볼까봐,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나와 다르게 생각할까봐 확인을 못하겠더라구요. 두려워서.

왕래없다가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에겐 그런게 있죠. 내가 모르는 무슨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일까. 하나의 사건에 대해 어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까  저사람의 삶의 목표는, 낙은 지금 무엇일까. 탐색만 하다가 끝나기도 하고 다시는 안만나게 되기도 하고 아직은 나와 같구나 생각하기도 해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나를 채운 물과 그 흐름이 같은 나의 연인들..." 서태지의 땡스 투.
저, 이 말 진짜 이해할 것 같아요. 내 몸속을 채운 물과 흐름이 같은 나의 팬들, 나의 주파수와 같은 사람들. 내 음악을 이해하고 감동받고 울고 또 기뻐하는 사람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서태지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데 저는 또한 그래요.
아직까지 내가 서태지와 주파수가 같지만 그게 달라지면 어떻게 해야할까. 다시 5년만에 만날 그가, 내가 모르는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할까. 그가 그 자리에 그 마음 그대로 있을 거라는것을 내가 미치도록 잘 아는데... 주파수가 빗겨간다면 바로 나의 그것이 빗겨가는 것일텐데 나는 그런 일이 발생해도 무덤덤할 수 있을까.

은공님이 하신 말있죠. 서태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말.  바로 이거에요. 내 주파수가 일탈하는 것을 내가 용납 못하는 거야. 비참하고 서글프죠.

"내일도 만나게 될까요."
이젠 그도 묻고 있네요. 우리 다시 만나게 될까 하고. 언제나 그랬지만 8집활동 내내는 내가 9집이 나올때 어느 자리에 어떻게 서있게 될 것인가 두렵게 그려보지 않을 수 없어요. 태지매니아의 고요함을 보면 알 수 있죠.주파수가 달라지는 모습을. 이건 좋다 나쁘다의 가치평가가 아니에요. 사이트의 흥망성쇠는 다 있는 거고. 태지매니아는 그동안 서태지 저리가라 할 정도로 고집스러웠으니까.

근데 그걸 알거든요.
태지의 음악이 내게 감동으로 들리지 않을 그날, 그 날이 온다면 그것은 바로 "나'의 마음이 무뎌져 버렸기 때문일 거라는 걸. 그가 변한 게 아니라 그가 퇴색된 것이 아니라 아마 내가 바로 내가 바로 삶에 찌들려서 일 거라는 것을 난 정확하게 알고 있거든요. 그의 음악이 설레이지 않는 그 날. 그 무덤같이 변했을 내 마음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기우라는 거 알아요. 물론 설레발치는 것일 뿐이예요.
그러나 서태지라는 예술가는 캐치했네요. '내일 도 만나게 될까' 라고..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어요. 사라져간 아이디들, 날리던 필자들, 팬이랍시고 떠들던 사람들.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이제 이렇게 보고 있는데. 서태지가 저렇게 묻고 있는데.

오늘 오랜만에 본 그 사람을 세월이 흐른 후에 저는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 때도 말이 통할까요. 아직까지는 다르지 않았지만요. 아직까지는. 서태지도..나도 같은 물의 흐름을 갖고 있지만요.


덧>아침의 눈 가사를 끝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벌써 첫구절에서 숨이 턱 막히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이 험한 세상에 무뎌지기를 소망하면서 살아왔는데 그 무뎌짐으로 서태지를 알아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눈물이 나요.

음주정담, 죄송해요. 낮에 땡스 투 보고 헉 놀랬고 한잔 하고 집에 오는길에 아침의 눈을 반복해 들으니까 비도 오는 한 밤중에 매냐보드에 자국을 안 남길 수가 없었어요, 여러분.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ozminerva.egloos.com/tb/4999978 [도움말]

덧글

  • 그러고도 2009/07/03 03:49 # 답글

    저는 서태지에게 팬으로서 허무한 마음을 받고 주지 않았음을 언제나 자신해요. 항상 서태지는 팬들의 마음을 독점하길 원하고 나는 팬으로서 서태지가 항상 팬을 일순위에 두길 원하죠.. 서로들의 가장 깊은 곳에 그게 있는 것 같아요. 익명의 누군가가 저더러 소아병이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그냥 소아죠. 병이고 컴플렉스라고 생각하면 고칠텐데, 그냥 저는 이 상태가 행복합니다. 남들이 스트레스 받아도 저는 평생 저의 실존을 주장하고, 서태지의 실존을 주장할 겁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미래는 서태지가 발성을 하고, 남들다운, 무뎌진, 어른다운, 성숙한, 제법 노래같은 노래를 하게 되는 미래인 것 같아요. 그런 날이 온다면 아마도 그제서야 무너질 것 같네요.
  • 오즈 2009/07/03 10:16 #

    소아...내가 소아일 수가 없는 게 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서 저는 어른이 되기를 강요받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자연스러운 건데도 그의 앞에서는 그렇게 되기가 참 싫어요. 저는 그가 무뎌진 어른이 된다면 한편으로는 위로가 될 것 같고 한편으로는 무너질 것 같네요..
  • 2009/07/03 04:39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오즈 2009/07/03 10:10 #

    우리 만나요. 연락할게요.
  • 2009/07/04 22:1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덧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