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쓴 글이 아직도 추천글에 떠있네요. http://cafe.naver.com/missyaus/347138
막내가 하이스쿨 간다고 그동안 초등학교 자녀를 키우면서 했던 경험 나누고자 한건데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위로도 되었다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네요.
왜 기대밖으로 호응을 얻었을까 생각해 보니까 한 이유가
제가 뭐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한 게 아니라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해서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고 생각들어요.
아시안 부모들, 정말 몹시도 자식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어 하잖아요. 열정과 실력이 뻗쳐 있는데
육아 조언으로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마라 라는 말 들으면 기운 빠지거든요. 뭐라도 좀 하게 해달란 말야....! ㅋㅋㅋ
또 제가 미호를 9년했는데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 물갈이도 많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육아 팁 같은 것 글쓰면 나이 많은 경험자 분들이 더 좋은 정보를 마구 얹어 주시곤 했었는데
이젠 연령대가 많이 어려진 것 같다고 생각했네요. 사실은 제가 나이가 먹은 거겠지만ㅎㅎ
쓰고 싶은 말이 더 많았었기에 조금 더 풀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창을 열었어요.
구체적인 팁은 이미 다 드렸고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나 하는 얘기요.
1. 귀족 아가씨, 도련님 키우는 기분
사실 호주에서 요구하는 전인적인 인간 키우는거 보통 어려운 게 아니예요. 시간과 돈과 정보찾는 정성, 운전하는 노동이 들죠.
우리 어릴 때는 알아서 열심히 해질때까지 놀고 부모님이 숙제 다 했니? 물어보시면 네 하면 끝이었어요.
저는 피아노 말고는 방과 후에 뭐 배워본적이 없어요. 책은 처박혀서 열심히 읽었지만
그러나 호주의 교육은 특히 지.덕.체를 강조하죠.
아카데믹한 공부(Literacy, Numeracy)는 말할것도 없고 음악, 미술, 체육, 댄스, 그리고 커뮤니티 활동 봉사 이런 것도 꼭 해야 되죠.
이리 저리 발로 뛰어다니다가 가끔 제인 오스틴 소설의 영국 영화 같은 것보면
거기 주인공 양가집 규수와 신사를 내가 키우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가씨들은 글도 잘 읽고 쓰고 수도 잘 놓아야 하고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해서
저녁에 디너 후에 피아노 치며 노래도 불러야 하고
가끔 파티도 나가서 춤도 매력적으로 추어야 하고 고아원 등 방문해서 구제도 해야 되더라구요.
남자면 사냥도 잘해야죠.
그러면서 말투는 고급이어야 하고 태도도 흐트러지면 안되죠.
이런 걸 호주 사회가 아이한테 원하더라니까요..ㅠㅠ (진짜는 아닐 수도 있는데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이랬다는...)
근데 이걸 양가집이 아닌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쫓아가며 흉내를 내려니 어디 쉽겠냐구요.
그러니 싸면서도 효과 좋고 시간 잘 보내는 것만 찾는 데 노하우가 발달..
팁이 아니네요. 이건 그냥 신세한탄.
2. 아빠는 큰 틀을, 나는 구체적인 실행을
부모가 같이 하는게 육아죠. 많은 가정에서 그렇겠지만 보통 아빠보다는 엄마가 아이들 뒷바라지를 더 많이 하죠.
제 경우에도 물론 그랬지만 그래도 크게 틀을 세우는 데는 아빠의 철학이 중요했어요.
자신의 학교 생활이 지독히 재미없었고 오로지 고등학교를 중퇴했다는 이유만으로 서태지의 팬인 남편이 원하는 것은 오직
'다니면서 즐겁게만 다닐 수 있으면 다른 건 아무 상관 없어'
였어요. 알 수 없는 미래의 수확을 위해 현재의 도넘는 고통을 참는 것에 아무런 의의를 찾을 수 없다는 거죠.
물론 호주와 한국의 교육환경은 많이 달라서 학교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아이들은 많이 없지만
그래도 학교에 가고 싶고 친구들 만나고 싶어하는 환경 제공이 우선이었어요.
그래서 학교 선택도 명성을 좇기 보다는 아이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구요.
운동, 예술, 커뮤니티 활동도 아이들과 제안-토론-선택 같은 컨설팅 없이는 시작하지 않았어요.
컨설팅 없으면 시켜도 안돼요....ㅠㅠ
(남편이 제일 질렸던 것 중에 하나가 일하다가 공휴일에 학원에서 7-8시간씩 묶여있는 9세 10세 정도의 얼굴 허연 동양애들이 밖에서 노는 애들을 창가에 매달려 부러운 듯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 거였어요.도대체 그게 뭐냐, 쓰러질 때까지 뛰어 놀아야 하는 애들을 좁은데 가둬놓고.!!! 열받아 하더군요.)
하여간 저는 애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거를 선심쓰듯 해주는게 제 1원칙이고
아이는 그렇게 열렬히 원하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싶으면
안하고 싶다고 강하게 의견 피력하기 전에는 살살 달래면서 되는 데 까지 끌고 나가보자는 게 제 비루한 두번째 원칙입니다.
'이건 안하고 싶다'는 자기 철학과 이유가 있으면 오히려 그게 더 훌륭한 거라고 저는 보고 있어요.
남편과 먼저 컨설팅을 한 후 아이와
왜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계속 안가고 다른 데 시험을 보는 엑스트라 노력을 해보길 권하는지 한참 토의했어요.
이 와중에 집 근처에 있는 학교를 평가 절하하여 아이에게 잘못된 가치관를 심어주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생각이 나요.
어디엘 가도 모두 전 세계에서 따져보면 상위권의 학교고 네가 잘 먹고 잘 살거라는 건 당연해.
나는 알지. 너도 나도 원래 훌륭하니까.. 뭐 이렇게 전제해주고.ㅋㅋ
여기에는 이런 기회가 저기엔 이런 기회가 있는 것 같고 너한테 이게 잘 맞을 것 같아. 뭐 이런 식으로요.
누구는 어떻고 저떻고 하는 비교언급은 일절 안했어요.
3. 토요일 오전에 아이가 어디있는가가 부모의 자녀에 대한 기대를 표현.
아이들 있는 집한테 토요일 오전은 정말 재미있는 시간대예요. 공교육을 벗어난 시간이지만
일요일처럼 종교, 가족행사들로 바쁘진 않고 여전히 아이들이 뭔가 더 배우기를 기대하죠.
이 시간에 자녀가 어디있는가가 부모가 아이가 어떻게 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더군요.
어떤 애는 학원에 있어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좁은 방의 의자에 앉아서 끝없이 문제를 풀죠.
어떤 애는 축구를 해요. 어떤 애는 한글 학교에 다니고 어떤 애는 발레를 하죠.
또 어떤 애들은 그냥 집에 있어요.(좋겠다ㅎㅎ)
부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어떤지가 아주 잘 보이죠.
개인적으로 저한테는 무척 확실한 의견이 있습니다.
토요일엔 한국학교죠. 제 생각에는 드라마를 보더라도 읽고 쓰기의 한국어는 끈을 놓으면 안되고
초등고학년에는 한자도 조금씩 배워서 고급 언어사용의 길을 터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때 계속 한국어에 노출시키고 나면 하이스쿨을 가고 나서 주정부 토요학교 (Government Saturday School)에 등록 시켜 공짜로(!) 양질의 한국어 수업을 하이스쿨 내내 받을 수가 있어요.
8:30am - 10:30am에 수업하는 주정부 토요학교는 스트라스필드, 채스우드, 세븐힐에 있답니다.
원하는 사람이 늘면 장소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하네요.
그러나 물론 가정마다 사정이 있어서 한글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겠죠.
그러면 주중 학교를 찾거나 그룹 과외, 정해놓고 홈스쿨이라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봐요.
의사소통이 중요한 사춘기에 부모와 말이 안통하고 한국의 조부모와도 대화가 안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서요...
4. 체육과 예술도 40세가 기준
지금은 많이 변했을 수도 있지만
한국에 얼마나 많은 음대 지원생, 미대 지원생이 있나요. 발레 지원생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커서도 자신이 어렸을 때 받은 그 예술 교육을 계속 즐기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요?
실제로는 쳐다도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요.
왜냐하면 입시, 실기시험준비 위주로만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 많던 미대지망생만 전시회를 다녀도, 음대 지원생만 음악 공연에 와도
이렇게 한국이 문화적으로 소비후진국으로 있지는 않을 거라는 소리를 들은 적 있어요.
잘 모르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하이스쿨 때, 아이들이 즐기는 것이 좁혀지고 정해지면
그걸 더 빡세게 시키는 경우를 주위에 많이 보았어요.
예를 들어 댄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이제 됐다고 공부해야 되니까 그만하자고 한인들이 많이 하시는 것에 비해
서양 부모들은 정해진 한 종목에 더 투자를 하더라구요.
인생 스킬로 만들어주는가 보다 싶어요.
그도 그럴 것이 계속 해서 뭐해, 그걸로 대학갈래? 라는 옵션이 없거든요.
대학은...이 분들은 아무 생각 없어요. 운동도 예술도 대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더라구요...
여기서 입상을 하고 경기를 이겨서 그걸로 상급학교 진학! 이런 경로가 아예 없으니까
정말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꾸준히 계속 교과서대로 가르치죠.
수영도... 한국에서는 3개월에 화려하게 끝내주는 4 영법, 호주에서는 천년만년 가르치죠.
그냥 계~~~~~속 하는 거예요.
아이들 즐기고 체력 키우라고.
뭔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땐
배울 때도 즐겁고 또 평생의 자산이 되어서 인생을 풍요롭게 살라는 목표로 가르쳐야 할 것 같다는 게 제 요지예요.
5. 나는야 팔랑귀..주위의 의견에 많이 흔들려요.
저도 그래요.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남들이 좋다고 하면 나도 해야 할 것 같고. 이거 시켜야 할 것 같고 저거 먹여야 할 것 같죠.
정보 수집 차원에서 주위의 의견은 소중한 거죠. 근데 그건 매우 중립적인 정보일 때만 유효한거구요.
오지랖이 넓게 아직도 이걸 안시키고 뭐해, 그 학교를 보내면 안돼 뭐 이런식으로 나오면 위험신호가 삐삐 울리죠.
특히 저런 얘기를 애들 앞에서 한다거나 하면 인연을 가만히 끊어요...
제 개인적인 경우를 말하자면 저는 호주 교회를 다녀요.
아이가 상급학교 시험을 치렀을 때 한인들에게는 어디냐 질문 받고 언급을 많이 당했지만
호주교회에서는 아무도 시험시기라는 거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죠.
그때 알았어요. 이건 그냥 우리들의 리그구나. 아시안들의 리그.
물론 리그에 있기로 한 이상 잘하면 좋겠지만 안되면 그 리그를 벗어나면 되는 거죠. 뭐 어쩔 수 없잖아요.
전혀 안 섭섭했어요.
짧고 굵게 시험 준비 trial 할 때도 한인들이 거의 없는 집 가까운 학원으로 아이를 보냈어요. 어차피 학원에선 공부 안해요.ㅋㅋ 그냥 아이들에게 약간의 긴장을 주고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는 거니까.
가까워야 하는 편의성이 최고였고 굳이 거기서 친구를 사귀거나 정보를 얻을 필요가 없어서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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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돈독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면 오지에 들어가거나,
비싼 사립학교에 들어가거나 상관없이 아이들은 잘 살아 갑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운명 또는 팔자가 있죠.
어렸을 땐 누구는 선교사 자녀로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학교 다니고 누구는 부자 아빠때문에 뉴욕의 사립학교를 가고 하지만
커서는 돈 많이 버는 직업 얻었다가 우울증오고 누구는 잘 결혼했다가 알고보니 신랑이 망나니라 이혼하고.. 후유...
당장 여기 미호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삶의 모습이 있나요.
아무리 우리가 보호해도 우리의 아이들이 다들 자기의 팔자대로 사는 건 우리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죠.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서적인 지원뿐.
한국에서든 호주에서든 또 다른 곳에서든 우리 아이들이
그저 평범한 회사원으로 아둥바둥 살다가도 40세 쯤에
좋아하는 운동하고 땀흘릴 수 있고 그림 그리고 음악하면서 삶의 풍요를 누릴 수 있으라고 그저 우리는 도와주는 거죠.
가끔 남도 돕고 커뮤니티 활동도 하면 금상첨화고요.
What more could we want?
배우자를 잘 만나면 복이지만 아니어도 어쩔 수는 없구요.
그거 어쩔 수 없다는 건 미호 여러분 더 잘알잖아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보면 나도 40세인데 내 인생은 어떻지 하는 생각이 들게 돼요.
아 모르겠다 나부터 잘먹고 잘살자 싶어지죠.
나는 내부모님의 훌륭한 작품이잖아요.
하고 싶은 거 찾아서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애들만 다그치지 말고.
이렇게 되는 결론..
ㅎㅎㅎ
결론이 이상한데 하여간..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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